2007년 12월 15일
다시 듣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Part.2
앞서서는 김광석 노래에 얽힌 필자 개인사를 다뤘다. 서두로 짧게 다룬 다는 게 지나치게 길어진 나머지 "다시 듣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Part.1&2로 나눠서 글을 쓰게 됐다. 본 Part.2 에서는 본격적으로 김광석과 그의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김광석은 생전에 1,2,3,4집 네 장의 정규음반을 냈고, 비정규 음반으로는 김광석 노래이야기&인생이야기, 김광석 다시 부르기 1&2를 발표했다. 사후에 함춘호가 프로듀싱한 "클레식 김광석 5집"으로 정규 아닌 정규음반이 나왔고, 숱한 리메이크(트레뷰트) 음반과 Live DVD, 컴필레이션 음반, 베스트 음반 등이 앞 다투어 기획되어 발표 되었다.
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광석의 음악을 말하기 이전에 그가 걸어온 음악의 길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김광석은 "새벽"(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동물원"을 거치면서 점차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진보적 민중 음악으로 시대에 부응했던 노래모임 새벽과 노찾사(새벽 산하의 별동대라고 보면 좋을 듯) 시절에는 김광석 그 자신도 80년대의 감성(시대,억압,민주주의,자유)을 음악으로 느끼고 표현 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노래하는 청년으로써의 책무를 감당 했었지 않았을까 라고 짐작해 본다. 새벽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들이 했던 노래가 가벼울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 무게감은 김광석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벽의 활동이 그런 것 이었다면 청년 김광석의 풋풋한 젊음을 발산하는 무대는 동물원 이었다. 무거웠을 책무인 시대적 사명에서 벗어나 20대 청년들이 하고 싶었던 새로운 음악을 동물원에서 펼쳐 보인 것이다. 여름방학을 틈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골의 한 교회에서 며칠이고 씻지도 않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녹음 했던 그 시간들, 동물원에서의 김광석은 새벽에서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 하는 것을 즐겼지 않았을까... 동물원 1집이 대히트를 치면서 "거리에서"를 불렀던 김광석도 유명세를 타게 되고 2집을 끝으로 동물원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된다. 아마추어로 남길 바랬던 나머지 동물원 친구들과는 달리 김광석은 예전부터 품어온 대중 가수로서의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팬으로써 김광석의 모든 곡 들이 좋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음악인 김광석을 되짚어 보면서 나는 새벽의 일원인 김광석, 동물원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란 이름을 걸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김광석의 음악을 따지고 들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우리 음악에서 포크는 크게 두 분류로 나눠진다고 본다. 하나는 저항성이 짙은 정신적인 포크, 두 번째는 형식과 스타일적인 포크이다. 전자에서의 포크는 80년 민주항쟁 때 형성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저항이라는 절대적 목적을 위해 음악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것이다. 이는 꼭 종교 음악과도 비슷한데 신을 찬양하고 부르짖기 위해 찬양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래서 저항가요(민중가요, 운동권가요)에서 포크는 형식 보다는 노래가 전달 하고자 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음악적 형식이 보다 자유로워 질수 있겠지만 그 음악에서의 형식은 철저히 본래의 포크성을 강조한다. 모순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항의 정신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올곧은 포크 음악을 고수 한다는 말이다. 후자의 포크는 전자와는 반대의 포크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이건 포크임이 분명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저항이 아닌 우리네 삶이나 사랑 같은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담고 있다. 노래의 내용은 일반적인 선상에서 아무래도 좋다. 단지 그 노래를 하는 음악인의 음악적 성향이 포크를 지향하고 포크적인 스타일을 추구 한다는 것이 형식과 스타일만이 있는 포크인 것이다. 포크가 음악적 장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성에서 분명한 구분이 있음을 필자는 말하는 바이다.
앞에서 이 복잡한 포크의 성격을 구분지어 놓은 이유는 김광석의 음악이 포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광석의 경우는 특수하다~라고 할 수 있다. 김광석은 아마추어가 아닌 직업 음악가로서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김광석이 노래를 배운 새벽이라는 노래모임의 성격도 그러 하였고, 시대적 상황도 그런 음악과 아마추어리즘의 음악인을 요구했었다. 그리하여 김광석 노래의 시작은 분명 저항적 민중가요에서 아마추어 정신을 갖고 출발 한 것이다. 노래모임 새벽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김광석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노래에 맞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게 되는데 정직하면서 담백하고 호소력 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광석의 스케일 큰 창법은 그렇게 만들어진 졌다. 새벽과 노찾사의 활동과 함께 김광석은 동물원에서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동물원 결성 이 전부터 신촌의 카페 등지에서 김광석은 이미 대중적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 그의 음악적 성격이 드러난다.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대중음악 이었고, 음악적으로 혹은 보컬(창법) 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는 저항 가요를 배우면서였던 것이다. 김광석이 음악적 활동 무대를 그렇게 바꾸면서 음악 표현의 정신적 근간이 바뀌었음을 이 대목에서 알게 된다.
노찾사와 동물원의 원년 멤버였던 김광석. 우리는 여기서 김광석과 같은 케이스가 거의 없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찾사의 음악은 진보적 저항가요였고, 동물원의 음악은 기성과는 차별 됐지만 분명 대중가요였다. 작년에 재결성된 노찾사는 초기의 음악들을 다시 부르면서 민중가요가 진정으로 민중의 노래가 되길 외치고 있고, 그들의 뒤를 잇는 음지의 노래패들은 여전히 대학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있다. 동물원은 아홉 장의 정규 엘범을 내면서도 아마추어리즘을 꿋꿋하게 지키며 한국 대중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했다. 이들과 비슷한 활동을 한 음악인을 보자면 노찾사 초기 멤버였던 안치환은 프로로 전향하여 지금까지도 저항가요를 부르고 있으며, 권진원, 강산에, 박학기, 장필순 등은 형식적이고 스타일적인 포크음악으로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네명은 애초부터 그런 음악을 한 사람들이다.)

[Write by-아브의 지옥]
# by | 2007/12/15 20:11 | 내가 들은 이 음악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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