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짖을 수밖에 없음을...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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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일구어 놓은 4.19 정신이 총칼로 짓밟혔듯이, 지난 10년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나는 그 과거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5.16이 있은 지 46년이 흐른 2007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붉은 피로써 새 세상의 문을 열었지만, 잠시 동안이었을 과도기 조차도 인정하지 못한 총칼 찬 그 자들에게 빼앗겨 버렸던 우리의 지난 과거를 구슬픔으로 4.19를 노래한 "푸른 하늘을" 통해서 되새겨 보아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과거의 "장면 정부"의 그때와도 같은 과도기를 살았었다.
혁명의 시작은 뼈아픈 것이고 그 과정은 고독한 것이지만, 그것들을 인내하고 이겨 낼 때에만이 혁명은 완수 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하고 말았으니 제 손으로 4.19를 뒤집고 5.16을 만들어 준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비록 기대에 부응 못하고 큰 실망을 안겨줬을지언정, 자신들의 힘으로 일구어 놓은 것의 험난한 과정조차 인내하지 못하고 이렇게 빨리 포기하고 놓아 버린 것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5.16이 우리에게 민생고의 고통을 덜어 주면서 빼앗아 간 대가는 자유였다. 5.16의 재물이 된 자유를 되찾기가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과거와 다른 세상인 지금에서 자유를 뺏는 등의 것은 아닐 테지만, 이미 국민에게 진실이 아닌 거짓을 전하는 것에 능수능란한 조중동이 아닌가? 특정 세력의 대변임을 자처한 그들의 횡포는 우리에게 알권리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은지 오래이므로, 자유억압의 변증적 수법에 대해서 혹은 대운하 실현을 통해 우리의 강산을 빼앗가 가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우려와 감시의 눈을 쉬지 않아야 할 것이다.)

4.19부터 5.16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과거의 사람들이 누렸을 자유의 기쁨이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즐겼을 그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누리고 이룩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것들을 하찮고 당연하다 여기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배고픔 앞에서 우리는 옳음의 판단마저도 저버린 채 고독의 과정을 다시 과거로 돌려놓고 말았다.

4.19의 대가가 젊은 학생들의 피였으며, 그런 대가를 치르고서야만 이룰 수 있었던 혁명이라는 것의 숭고함과 고귀한 투쟁정신을 노래한 김수영 시인의 "푸른 하늘은"에서는 5.16을 예상치 못했었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폐단들을 통해 앞으로의 날들을 조심스레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짓밟아 버릴 수 있는 그들의 일관된 행동력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바른 것을 지키는 보수가 아닌, 기득세력 유지와 배불리기에 힘쓰는 보수가 지금의 그들이기에 잃었던 것을 찾기 위해 특유의 행동력을 보일까~ 나는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원대로 정권을 탈환한 그들의 보수가 올바른 것을 지향하고 변해가길 간절히 바래본다. 또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 않을 민중의 힘을 나는 믿는다.

지금부터 우리는 지난 몇 년 보다 더 날카로운 눈으로 권력자들을 지켜보고, 부지런히 손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이번 대선을 우리의 손으로 만든 21세기형 5.16 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Write by-아브의 지옥]

by 아브의지옥 | 2007/12/21 13:21 | 좋은 세상 만들기 | 트랙백 | 덧글(1)

통탄의 심정으로...




이건 아니다. 정말 이건 아니다.
뽑혀도 되는 사람이 있고, 결단코 뽑혀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무지의 힘이 이렇게도 큰 것 이었던가~ 설마 설마 했는데 어쩌자고 이런 일 까지 저질러 버렸는지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과반이 넘는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앞으로 한 발자국 내 딛기도 벅찬 마당에 뒤로 달리기 선수를 뽑아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그들의 심사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무지하고 어리석은 선택이 앞으로 우리를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 이다. 그들은 분명 그들의 피로써 책임져야 할 것이다.

진정한 보수가 아닌 썩어문드러진 부패의 보수가 될 것이요~ 어렵싸리 일궈 놓았던 지난 10년의 성과들마저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바랬던 것인가?

그들은 그때 가서 무책임 해서는 안되리라~ (다시 되돌려 놓으면~ 다시 올바른 사람 뽑아서 고치면 되지~ 식의) 적어도 다시는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씨부렁거리지 말아야 하리라.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던들, 뽑아도 되는 사람이 있고 결단코 그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정말 아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서슴지 않아도 되는 기업이나 무엇 하나 잘못되면 얼버무려 버릴 수 있는 자치행정과는 다른 것이 국가이다. 회장이나 시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국가의 지도자란 말이다.


모든 것은 대운하로 통한다는 그 미친 생각이 비롯된 5.84km의 청계천... 허울 좋게만 보인 청계천 복원이 근본적 문제점들이 많고, 또 괴이한 관리로 운영되듯이... 대한민국의 앞날도 근본적으로 잘 못된 사고를 억지로 쑤셔 박게 될 것이며, 엉망진창인 운영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엔 "대운하 정책! 못하게 됐습니다~" 등의 없었던 일로 되는 공약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그 때는 무슨 경제 정책을 내 세울 것인가? 다른 경쟁 후보들의 경제정책을 도용하거나, 별다른 정책 없이 정권 유지에만 힘쓸 상황이 될 것이 뻔한데, 정책 참모라고 별 수 있으랴~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내 놓은 공약이 대운하인걸~ 그리고 대운하는 지금의 참모에서 나온 생각이고 말이다.)

추진력 좋아 하시네.
사대외교 추진력, 대기업 잘 먹여 살리기 추진력, 학벌지상주의 추진력, 영어를 국어 이상으로 만들 추진력~ 노조해체 추진력~ 국민 모두를 위한!! 공공을 위한 추진력이 아닌, 특정 세력만을 위한 이러한 추진력 따위라면 개나줘라.

물의 흐름이 있어 돌맹이가 모이고, 모래가 깔리고, 수초가 있는 자연의 산물 보다는.... 콘크리트 어항에 고기 풀어놓고, 관상용 수초 심어 놓고, 시멘트로 돌맹이 붙여 놓아서 매번 물 갈아주고, 어항 닦아 주는 것을 보고 이것이 본래의 자연이다~ 이것이 친환경이다~ 라고 말하는 ...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우리가 양옥이라 부르는 똑 같은 집들이 무수히 늘어져 있는 마을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움과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획일적인 집, 그런 마을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아도 앞으로 그런 나라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니 너무 걱정은 말라~ 그런 마을과, 그런 하천 복원과 부실공사의 원천인 경부 고속도로를 만든 장본인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좋게 말해서 순수한 민심이지~ 무지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에게 그렇게 많은 표를 줄수가 있냔 말이다. 사는게 힘들어서 잘 살게 해주겠다는 그 말만 믿고 한 표 준 것이냐? 그렇다면 그대들, 분명 실수한 것이다. 기본적인 관념이 2,30년 전에 머물어 있는 사람에게 21세기의 경제를 맡긴다고?

요즘은 아파트 재개발이 한 몫 잡는 수단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산동네 밀어서 한 것이 재개발이다. 산동네 밀어서 재개발 할 때, 없이 사는 사람들 어땠는가? 용역들에게 몽둥이로 얻어맞고, 포크레인이 집 부셔 가면서 우리네 터전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 그 기억을 벌써 잊은 건가? 아니면 그 과거 시절에 한 몫 잡았던 개발업자들의 후손들이 예전이 그리워서 그에게 힘을 실어 준 건인가? 가까운 지난 날... 청계천 고가도로 걷어 내면서도 점포 없는 노점 상인들이 그렇게 당했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들의 차례다.

경부운하 하나면 다 해결되는 그런 정책... 산동네 밀어내서 재개발하고, 상인들 밀어내고 삐까뻔쩍하게 만들었던 멀지 않은 지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 그런걸 신봉하는 인물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일꾼이 됐으니 말이다.

눈앞의 이익과 실적에 눈이 먼 사람이... 장기적 투자를 해야 하는 통일 사업에는 관대할 것 같은가? 어렵고 짜증나는 김정일 설득하는 일 보다는 강대국이 주도하는 경로를 따르는게 훨씬 빠른 결과를 내 놓을 수 있는데 말이다.

거기에는 자주도 없고, 정도도 없을 것이며 신념 따위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보수 진영에 있다고 다 보수로 볼 수 없다. 이념적 보수가 아닌, 제 밥그릇 챙기는 기득 보수기 때문이다. 그 인물이 그렇다. 오죽했으면 퇴역했던 원로가 "이것은 보수가 아니다"란 기치를 내걸고 초라한 무소속으로 돌아 오기까지 했으랴~

거기에다가 그는 들어 내놓고 범죄자 아니냐? 누구는 민주주의를 위해 옥에 갇히고 전과자가 됐지만, 그는 기업가로써 이윤추구를 위해 부당한 방법을 써서, 정치 한번 해 보겠다고 하다가 불법 선거 들통 나서 전과자가 된거 아니냐? 자신이 깨끗하지는 못하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않느냐~ 그것이 지도자가 되는데 결격 사유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 우리는 진짜 범죄자를 우리의 지도자로 모시게 된 것이다. 개발과 실적을 위해서라면 범죄자라도 당당한 그... 우리 시대는 그런 사람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또 사람 됨됨이는 어떠한가? 자치 단체장을 할 시절의 자료 화면들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안 나빠 질 수가 없다. 자신 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서울시청 직원,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 한나라당 당직원 등등) 대할 때면 기본적으로 말을 놓고 보는 습관(반말의 지시적 어투)은 대기업의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이미 몸에 배여 있는 것 일게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도층들도 많다.) 나이를 떠나서 자신이 아무리 윗사람이고 최고위층 일지언정 아랫사람들조차 위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국민을 존중하고 떠받드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 요 단락은 억지성이 잔득 담긴 트집 잡기임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써 넣고자 함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이기에 알려주고자 하기 위함이고, 이러한 사소한 부분에서 까지도 그 사람이 구시대의 (CEO가 아닌 "사장님"의) 권위적인 인물이라는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요즘... 우리는 올바르고 정당한 나라 만들기 보다는 편리하기만 하면 다 되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인가~ 올바른 것을 위해 조금의 수고를 감수 하고서라도 험한 길을 걷는 것 대신 알아서 다 해주는 케이블카를 탄 것인가?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아스팔트 도로 보다는 흙길 등산로가 산행하는데는 제격이고 어울리는 것이다. 좀 지저분 하기는 해도, 늪지대는 강과 육지의 절충적인 역확을 한다. 그것이 본래의 임무이고, 본래의 모양이다. 한강이나 청계천의 콘크리트 옹벽처럼 인간적인 시각에서 아무렇게나 고쳐버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덧 편하게 산을 오를 수 있는 아스팔트 도로와 케이블카를, 깔끔하게 정리되어버린 한강과 청계천을 바라고 있다. 또 그런 것을 좋은 것 인냥 인식 해 버리고 있다.

한 동안 "옳은 것을 찾자!" 라고 외치던 능동적 열망을 품었던 사람들까지도 벌써 지쳐 버리고 말았는지 그것들의 불편함 보다는 알아서 잘 굴러가기만을 바라는 수동적이고 아닐 한 마음이 생겨 버린 것일까? 피동적으로 변해 준다면 다 해결해 줄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책임까지도 저버릴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은 조금 더 참아 줬어야 했다. 조금 더 믿어주고 응원해 주었어야 했다.

등산로 아님(등산 금지) 표지판이 있어도, 빨리 하산 할 수 있기에 자연을 회손 하면서라도 그 길에 발을 내 딛는 행동을 하고 말았았던 그들...  내 딛는 그 곳이 표지판 없는 지뢰지대 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들은 발목을 잃더라도 누구의 탓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이 싫어 반대진영의 인물을 찍었다는 이 묻지마식 날림 투표, 당신들이 한 행동이 제 발로 지뢰밭에 들어간 것임을 기억하라.

결과는 나왔다. 막판 기적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며, 졌으면 깨끗이 승복하고 반성과 겸허로 마땅히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어가는 이런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자니 가슴이 찢어진다. 아~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진정 염려 스럽다. 그리고 민심으로 위장한 국민들의 무지와 단순에 분개가 치민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 버린 개판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해 하며 통탄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Write by-아브의 지옥]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주의 장례식 조사>

                                                                                        - 김 지 하 -



시체여! 너는 오래 전에 이미 죽었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넋없는 시체여!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여!

썩고 있던 네 주검의 악취는 '사쿠라'의 향기가 되어, 마침내는 우리들 학원의 잔잔한 후각이 가꾸고 사랑하는 늘푸른 수풀 속에 너와 일본의 2대 잡종, 이른바 사쿠라를 심어놓았다. 생전에도 죄가 많아 욕만 먹는 시체여! 지금도 풍겨온다. 강렬하게 냄새가 지금 이 순간에도 충혈된 사냥개들의 눈으로부터 우리를 엄습한다.

시체여! 죽어서까지도 개악과 조어와 전언과 번의와 난동과 불안과 탄압의 명수요 천재요 거장이었다. 너, 시체여! 너는 그리하여 일대의 천재(賤才)요 절대의 졸작이었다. 구악을 신악으로 개악하여 세대를 교체하고 골백번의 번의의 번의를 번의하여 권태감의 흥분으로 국민정서를 배신하고, 부정불하, 부정축재, 매판자본 육성으로 빠찡꼬에 새나라에 최루탄 등등 주로 생활필수품만 수입하여 노동자의 언덕으로 알았던 '워커힐'에 퇴폐를 증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아 국민도의를 고취하고 재건한 철두철미 위대한 시체여! 해괴할손 민족적 민주주의여!

너는 또한 뉴코리아의 무수한 유리창에서 체질마저 개악하였다. 어둡고 괴로웠던 3년 전 안개낀 어느 봄날 새벽, 네가 3천만 온 겨레에게 외치던 귀에도 쟁쟁한 그 역사적인 절규를 너는 벌써 잊었는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던 공약 밑에 너는 그러나 맨 먼저 민족적 양심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그때 이미 우리는 알았다. 너 죽음의 저 야릇하게 피비린내 감도는 낌새를 우리는 보았다. 죽음으로 죽음으로만 향한 너의 절망적인 몸부림을 우리는 들었다. 우리에게 정사를 강요하는 너의 맹목적이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목소리를, 그리고 우리는 맛보았다. 극한의 절망과 뼈를 깍는 기아의 서러움을. 시체여! 반민족적 비민주주의여! 석학의 머리로서도 천부의 의감으로서도 난해하기만 한 이즘이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절망과 기아로부터 해방자를 자처하는 소위 혁명정부 전면적인 절망과 영원한 기아 속으로 민족을 함몰시키에 이르도록 한 너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느냐? 무엇이더란 말이냐? 말하지 않아도 좋다. 말 못하는 시체여! 길고 긴 독재자의 채찍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자신의 치명적인 상처는 스스로 때리고 넘어진 너, 누더기와 악취와 그 위에서만 피는 사쿠라의 산실인 너. 박의장의 이른바 민족적 민주주의여! 너의 본질은 곧 안개다!

어느 봄날 새벽의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너, 안개여, 너는 안개 속에서 살다가 안개 속에서 죽은, 우유부단과 정체불명과 조삼모사와 동서남북의 상징이요, 혼합물질이었다. 한없는 망설임과 번의, 종잡을 길 없는 막연한 정치이념, 끝없는 혼란과 무질서와 굴욕적인 사대근성, 방향감각과 주체의식과 지도력의 상실, 이것이 곧 너의 전부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소위 혁명정신으로, 이같이 허무맹랑한 이념의 몰골을 그대로 쳐들고서 공약을 한다. 재건을 한다. 유대를 더욱 공공히 한다. 고리채 어쩌구, 5개년계획에 심지어 사상논쟁까지 벌이던 그 어마어마한 배짱은 도시 빌려온 것일까? 그것은 '덴노헤이카'에게 빌린 것이 분명하다. 일본군의 그 지긋지긋한 전통의 카리스마적 성격은 한국군 구조의 바닥에 아직도 허황된 권력에의 미망과 함께 문제의 그 배아를 길러낸 것이다.

시체여! 고향으로 돌아가라! 너는 이미 돌아갔어야만 했다. 죽어서라도 돌아가라, 시체여! 우리 3천만이 모두 너의 주검 위에 지금 수의를 덮어주고 있다. 들리느냐? 너의 명복을 비는 드높은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들이 이미 죽은 너의 육신과 정신으로 결코 반공도 재건도 내신도 불가능하다는 저 민족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냐? 저 통곡이 들리지 않느냐? 가거라! 말없이 조용히 떠나가거라! 그리하여 높은 산골짜기를 돌고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시체여! 하나의 어리디어린 생명을, 꽃분이, 순분이의 까칠까칠 야위고 노오랗게 부어오른 그 얼굴을, 아들의 공납금을 마련키 위해 자동차에 뛰어드는 어떤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월16일만의 민족적 민주주의여! 백의민족이 너에게 내지는 마지막의 이 새하얀 수의를 감고 훌훌히 떠나가거라! 너의 고향 그곳으로 돌아가거라, 안개 속으로 가거라! 시체여! 돌아가거라! 이제 안개 걷히면 맑고 찬란한 아침이 오리니 그때 너도 머언 하늘에서 북받쳐오르는 기쁨에 흐느끼니라. 일찍 죽어 복 되었던 네 운명에 감사하리라!

그러나 시체여!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바로 지금 거기서 네 옆사람과 후딱 주고받은 그 입가의 웃음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대량검거의 군호인가? 최루탄 발사의 신호인가? 그러나 시체여!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목메이도록, 뜨거운 조국과 너의 최초의 악수인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죽은 이의 입술가에 변함없이 서리는 행복한 미소인 것을.

시체여!

                                                                                      1964년 5월20일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by 아브의지옥 | 2007/12/20 00:20 | 좋은 세상 만들기 | 트랙백 | 덧글(5)

다시 듣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Part.3

Part.3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김광석이기에 이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리라. 그리고 이번에는 꼭 마무리 지으리라...

김광석의 정규음반 네 장에서 김광석 본인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인 노래는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곡들 중에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는 곡은 많이 봐야 다섯 곡 정도다. 김광석이 쓴 곡도 나쁘지 않지만, 우수하다 라고 할 정도의 곡은 얼마 안 된다는 말이다. 반면 다른 사람의 곡을 김광석이 노래한 경우에는 대다수의 곡이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이것은 김광석이 보컬로써의 능력은 단연 최고지만 곡을 만드는 능력에서는 탁월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새벽이 밀어주는 스케일 큰 목소리를 가진 가수, 동물원에서 "거리에서"를 부른 사람이란 큰 관심과 기대 속에서 김광석은 1집을 내 놓게 된다. 하지만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이렇다 할 호응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그런 1집을 살펴보니 다른 엘범 들과는 달리 열 곡 중 여섯 곡을 김광석 자신이 만든 곡으로 채워진 엘범 구성이 유독 눈에 띈다.(다른 엘범 들에서는 김광석 본인 곡의 비중이 크지 않다.)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이렇게 추측해 본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던 김광석, 그 첫 번째 음반을 만들면서 김광석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지 않았을까? 혹은 새벽의 민중가요적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동물원의 멜랑콜리 한 음악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내고,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남들이 주는 곡 보다는 자기 자신이 만든 노래들로 승부를 보고 싶었고, 그런 고집으로 엘범을 만들다 보니까 작곡 능력에서 남 다른 점을 보여주지 못 했던 김광석의 1집은 외면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필자의 생각이다.)

2년 후 그는 다시 2집을 우리에게 내민다. "사랑했지만"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김광석은 재기에 성공 하는데 필자가 김광석 1집의 실패 원인으로 추측했던 이유가 2집에 있다. 1집의 차기작인 2집에서는 1집과 달리 김광석의 자작곡이 연주곡으로 딱 한 곡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2집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대중의 인기를 얻고 히트한 곡은 "사랑했지만"과 "그날들" "사랑이라는 이유로" 세 곡이지만 김광석이 그토록 찾아 해매던 그만의 음악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2집은 한국 포크사의 김광석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1집에서는 음악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허우적거렸지만 결실은 없었고, 2집에 들어서야 갈피를 잡았지만 그것은 보컬리스트로써의 김광석일 뿐이었다. 3집은 김광석이 단지 보컬로써의 능력 뿐 아니라 작곡능력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뤘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뮤지션으로써의 성장을 말하는데 3집에 실린 김광석의 자작곡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행복의 문" 단 두 곡뿐이지만 1집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1집에 실렸던 그의 자작곡도 나무랄것 없는 곡이지만 왠지 빌린 양복을 입고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3집에서의 그 두 곡으로 옷맵시가 잘 들어나는 옷을 입기 시작한 김광석에게 우리는 "이제야 너만의 스타일로 옷을 고를지 알게 됐구나"라고 칭찬해 줘야한다. 그는 음악적 정체성을 찾았던 것이다.

3집 이후 1년 뒤 "다시 부르기1"이 나온다. 어쩌면 3집과 "다시부르기1"은 뮤지션으로써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점에서 김광석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부리기1"은 그간의 1,2,3집과 자신이 참여했던 동물원 1,2집에서의 베스트를 뽑고, 저항가요를 부르짖던 그 시절에 자신이 좋아했던 곡 "그루터기" "광야에서"를 수록함으로써 베스트 성격이 강한 발매였다. 그리고 김광석 대표곡 중 하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등병의 편지"를 김형석에게 받아 실었던 엘범 이기도 하다. (필자는 "다시부르기1"을 베스트 그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필자가 2000원 주고 리어커에서 샀다는 4집(넷(3집은 셋)... 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이해 못한 필자이다)이다. "일어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혼자 남은밤" 맑고 향기롭게" "자유롭게" 같은 그 유명한 곡 들이 이 한장의 엘범에 담겨져 나왔다. 히트곡이 많은 것은 곧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음을 의미이다. 하지만 필자는 4집에서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점은 김광석이 모던포크(Modern Folk)를 구사하고 있고, 또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받아 들여 그것을 부족함 없이 보여 주는 점이다. 김광석 음악에서 모던포크는 "다시부르기2"를 통해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지만, 4집은 리메이크나 트레뷰트가 아닌 김광석의 정규 엘범이고, 그 가치는 "다시부르기2"와는 또 다를 것이다.

이제 김광석을 레전드의 반열로 올려놓은 불후의 명반 "다시부르기2"에 대해서 말해보려 한다. 김광석이 내 놓은 여덟 장의 엘범 중에서 단연 최고의 음반이자 한국 모던포크사에 한 획을 긋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남아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어줄 베스트 오브 베스트 엘범 "김광석 다시 부르기2" 한국 포크롹의 대부 한대수를 비롯하여 이정선, 양병집, 김의철, 김목경 같은 모던포크계의 선구자들의 음악들을 재해석 했고, 백창우, 한동헌 같은 민중음악계 선배들의 곡, 그리고 동물원 친구 김창기, 유준열의 곡과 함께 자신의 곡 까지 총 열 한곡이 수록되어 있는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사 초기의 곡 들을 재발견, 재해석 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다. 서구 음악들의 무분별한 수용(서구음악 따라 하기에 급급했던...)과 군사정권의 탄압(건전가요와 금지곡 지정, 수배 등등...) 속에서 묻히고 잊혀 가던 그런 곡 들을 재발견해서 원 곡 이상의 보석으로 만들면서 재해석이란 의미와 김광석만의 깊고 깊은 음성으로 그것들을 재창조 했다는 의미는 전대미문이었고 전무후무한 업적임에 분명하다. 가히 "인생이 담겨져 있다."라고 필자는 이 음반을 평한다. 우리네 인생사가 모두 이 한 장의 음반에 담겨 있다니 놀랍고 경이롭지 않은가 말이다. 음악적으로는 모던포크를 새로이 정립하면서 그 세션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을 한 곡 한 곡에서 느낄 수 있다. 악기 적으로 풍성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세션은 모던하면서 포크적인 어쿠스틱 사운드란 이런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악기 맛을 제대로 우려내지만 김광석의 보컬에 어떠한 간섭을 하지 않는 조동익 사단의 절정미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광석의 노래이다. 자신의 음악에서 모던포크라는 장르의 절정기에 서있던 시기여서인지 이전과 같은 스케일 큰 깊고 호소력 짙은 창법은 이 음반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마음을 끌어당기는 다소 건조한 음성이 "다시부르기2"의 압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새벽시절의 내지름에서도, "거리에서"를 부를 때의 우울한 중저음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무덤덤하고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고 있는듯하지만 우리는 그가 하는 마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바로 인생이라는 우리네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라는 것을 말이다. 인생이 담겨져 있는 음반 "김광석 다시부르기2"였다.

"대학생이 되면 처음 할 일은 김광석의 공연을 보는 것"이 꿈이었던 필자는 그의 노래를 음반과 공연실황이 담겨있는 기록물로 밖에 접하지 못했다. 그가 기타 하나 메고 노래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인간적으로 소통했을 사람들은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김광석이 우리 곁은 떠난 지 12년이 되는 내년에 그를 기리는 추모공연에는 그를 만나 보지도 못했던 후배 가수들이 선다고 한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내 눈과 귀로 보고 듣지는 못하지만 김광석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노래하고 있고 우리는 그의 노래에 공감하고 감동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가 걸어갔던 인생이라는 길을 우리도 걷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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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의지옥 | 2007/12/16 00:10 | 내가 들은 이 음악 | 트랙백 | 덧글(1)

다시 듣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Part.2

앞서서는 김광석 노래에 얽힌 필자 개인사를 다뤘다. 서두로 짧게 다룬 다는 게 지나치게 길어진 나머지 "다시 듣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Part.1&2로 나눠서 글을 쓰게 됐다. 본 Part.2 에서는 본격적으로 김광석과 그의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김광석은 생전에 1,2,3,4집 네 장의 정규음반을 냈고, 비정규 음반으로는 김광석 노래이야기&인생이야기, 김광석 다시 부르기 1&2를 발표했다. 사후에 함춘호가 프로듀싱한 "클레식 김광석 5집"으로 정규 아닌 정규음반이 나왔고, 숱한 리메이크(트레뷰트) 음반과 Live DVD, 컴필레이션 음반, 베스트 음반 등이 앞 다투어 기획되어 발표 되었다.

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광석의 음악을 말하기 이전에 그가 걸어온 음악의 길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김광석은 "새벽"(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동물원"을 거치면서 점차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진보적 민중 음악으로 시대에 부응했던 노래모임 새벽과 노찾사(새벽 산하의 별동대라고 보면 좋을 듯) 시절에는 김광석 그 자신도 80년대의 감성(시대,억압,민주주의,자유)을 음악으로 느끼고 표현 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노래하는 청년으로써의 책무를 감당 했었지 않았을까 라고 짐작해 본다. 새벽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들이 했던 노래가 가벼울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 무게감은 김광석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벽의 활동이 그런 것 이었다면 청년 김광석의 풋풋한 젊음을 발산하는 무대는 동물원 이었다. 무거웠을 책무인 시대적 사명에서 벗어나 20대 청년들이 하고 싶었던 새로운 음악을 동물원에서 펼쳐 보인 것이다. 여름방학을 틈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골의 한 교회에서 며칠이고 씻지도 않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녹음 했던 그 시간들, 동물원에서의 김광석은 새벽에서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 하는 것을 즐겼지 않았을까... 동물원 1집이 대히트를 치면서 "거리에서"를 불렀던 김광석도 유명세를 타게 되고 2집을 끝으로 동물원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된다. 아마추어로 남길 바랬던 나머지 동물원 친구들과는 달리 김광석은 예전부터 품어온 대중 가수로서의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팬으로써 김광석의 모든 곡 들이 좋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음악인 김광석을 되짚어 보면서 나는 새벽의 일원인 김광석, 동물원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란 이름을 걸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김광석의 음악을 따지고 들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우리 음악에서 포크는 크게 두 분류로 나눠진다고 본다. 하나는 저항성이 짙은 정신적인 포크, 두 번째는 형식과 스타일적인 포크이다. 전자에서의 포크는 80년 민주항쟁 때 형성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저항이라는 절대적 목적을 위해 음악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것이다. 이는 꼭 종교 음악과도 비슷한데 신을 찬양하고 부르짖기 위해 찬양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래서 저항가요(민중가요, 운동권가요)에서 포크는 형식 보다는 노래가 전달 하고자 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음악적 형식이 보다 자유로워 질수 있겠지만 그 음악에서의 형식은 철저히 본래의 포크성을 강조한다. 모순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항의 정신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올곧은 포크 음악을 고수 한다는 말이다. 후자의 포크는 전자와는 반대의 포크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이건 포크임이 분명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저항이 아닌 우리네 삶이나 사랑 같은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담고 있다. 노래의 내용은 일반적인 선상에서 아무래도 좋다. 단지 그 노래를 하는 음악인의 음악적 성향이 포크를 지향하고 포크적인 스타일을 추구 한다는 것이 형식과 스타일만이 있는 포크인 것이다. 포크가 음악적 장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성에서 분명한 구분이 있음을 필자는 말하는 바이다.

앞에서 이 복잡한 포크의 성격을 구분지어 놓은 이유는 김광석의 음악이 포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광석의 경우는 특수하다~라고 할 수 있다. 김광석은 아마추어가 아닌 직업 음악가로서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김광석이 노래를 배운 새벽이라는 노래모임의 성격도 그러 하였고, 시대적 상황도 그런 음악과 아마추어리즘의 음악인을 요구했었다. 그리하여 김광석 노래의 시작은 분명 저항적 민중가요에서 아마추어 정신을 갖고 출발 한 것이다. 노래모임 새벽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김광석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노래에 맞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게 되는데 정직하면서 담백하고 호소력 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광석의 스케일 큰 창법은 그렇게 만들어진 졌다. 새벽과 노찾사의 활동과 함께 김광석은 동물원에서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동물원 결성 이 전부터 신촌의 카페 등지에서 김광석은 이미 대중적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 그의 음악적 성격이 드러난다.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대중음악 이었고, 음악적으로 혹은 보컬(창법) 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는 저항 가요를 배우면서였던 것이다. 김광석이 음악적 활동 무대를 그렇게 바꾸면서 음악 표현의 정신적 근간이 바뀌었음을 이 대목에서 알게 된다.

노찾사와 동물원의 원년 멤버였던 김광석. 우리는 여기서 김광석과 같은 케이스가 거의 없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찾사의 음악은 진보적 저항가요였고, 동물원의 음악은 기성과는 차별 됐지만 분명 대중가요였다. 작년에 재결성된 노찾사는 초기의 음악들을 다시 부르면서 민중가요가 진정으로 민중의 노래가 되길 외치고 있고, 그들의 뒤를 잇는 음지의 노래패들은 여전히 대학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있다. 동물원은 아홉 장의 정규 엘범을 내면서도 아마추어리즘을 꿋꿋하게 지키며 한국 대중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했다. 이들과 비슷한 활동을 한 음악인을 보자면 노찾사 초기 멤버였던 안치환은 프로로 전향하여 지금까지도 저항가요를 부르고 있으며, 권진원, 강산에, 박학기, 장필순 등은 형식적이고 스타일적인 포크음악으로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네명은 애초부터 그런 음악을 한 사람들이다.)

새벽이나 동물원에서의 음악은 김광석에게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고, 음악적 역량을 발전시켰을 뿐이지 김광석의 음악은 아니었다. 김광석의 음악을 규정짓고자 함은 아니지만 음악적인 정립이 필요한 것 같아 그것을 해볼까 한다. 김광석은 포크의 스타일과 형식만을 자신의 음악에 채용 했다. 김광석 음악 말기에 모던포크(Modern Folk)를 자신의 음악으로 받아들이며 롹(Rock) 이라는 저항적 음악 양식을 포크(Folk)와 접목 시키는데 전통롹이 아닌 모던롹 스타일을 따랐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저항적 민중성은 찾아 볼 수는 없다.(산성의 롹과 염기성의 포크가 만나 중성의 모던포크가 되더라~의 식이 아니다.) 단지 롹 이라는 불편한 접근성을 보편적 포크와 융화 시키면서 대중에게 보다 다양하고 쉽게 어필 할 수 있는 음악적인 출구를 찾았을 뿐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김광석의 포크에는 포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메시지가 있을 뿐 거기에는 저항성의 민중가요적인 정신은 없었다.

                                                                                       [Write by-아브의 지옥]

by 아브의지옥 | 2007/12/15 20:11 | 내가 들은 이 음악 | 트랙백

다시 듣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Part.1

며칠 전에 포탈 싸이트 뉴스에서 김광석 추모 관련 기사를 접했다. 김광석 12주기를 맞이하여 기념 공연도 열고 노래비도 세워진다는 내용이었다. 12년...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나 생각 하면서 한 동안 듣지 않았던 김광석의 "다시부르기2"를 꺼내 틀면서 "내가 들은 이 음악" 그 두 번째로 김광석과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김광석 노래 한 두곡쯤은 입에 붙어 있을 정도로 친근한 음악인이 김광석이다. 그의 음악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필자에게만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김광석은 서른 두해를 살았지만 그의 음악은 나이에 묶여있지 않았다. 20대 군인의 마음을 노래하기도 하였고, 반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를 떠나보낸 60대 노인의 구슬픈 마음까지 해아린 것 같은 목소리로 그는 우리네 삶을 노래하였다. 인생사를 노래해서 일까? 김광석 노래에 관한 사연쯤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다못해 누구나 서른 살이 되는 해에는 "서른 즈음에"를 불러 보면서 마음 한 켠이 구슬퍼 지더라~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광석 노래에 얽힌 필자의 이야기를 해 보겠다. (내 나름대로는 특별한 일화들 이다 보니 김광석 노래가 내겐 더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처음으로 김광석 음악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EBS에서 김광석 공연을 해 주고 있었는데 머리가 쭈삣쭈삣 서는 것 같고 닭살도 돋는 것이 충격 그 차체였다. 나중에 전율이라는 단어를 알고 나서 그 때 느낀 것이 전율이라는 것이었구나 생각했다. 전율이 온 몸을 휘감은 그 공연을 보면서 필자는 난데없는 다짐은 했었는데 그 다짐이라는 것이 "대학생이 되면 처음 할 일은 김광석 콘서트를 보는 것"이란 다소 엉뚱한 미래 계획을 다짐 했던 것 이다.(어쩌면 소박하면서 성숙한 바램 이었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마음만 먹는다면 서울로 휙~올라가서 공연을 봤을 테지만 어렸던 탓인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즈음 MBC에서 개그맨 한 명과 일반인 두어 명이 세계를 여행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방송 됐었는데 그 프로의 타이틀송이 김광석 4집의 "바람이 불어오늘 곳" 이었다.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 곡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앞 소절을 몇 번이고 따라 불렀었고 며칠 뒤 리어커(길보드)에서 2000원을 주고 김광석 4집 테입을 샀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흘러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그 여행 프로도 더 이상 전파를 타고 있지 않았고, 김광석이란 이름도 내게서 희미해질 때 쯤 9시 뉴스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컴퓨터 자격증이나 따 볼까 하고 학원을 다녔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실기시험을 보는 날 이었는데 시험장에서 제일 먼저 시험을 마치고 제출을 위해 마지막 저장을 하는 그 순간 갑자기 컴퓨터 에러가 뜨더니 데이터가 복구 불능이 되어 버렸는데 아무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어찌나 억울했던지 나도 모르게 울어 버리고 말았고, 창피해서 시험장을 뛰쳐나가서 씩씩 거리며 길을 걷고 있는데 학원 선생님이 뒤 따라와 집까지 태워 준다며 차에 타라고 했다. 낡아빠진 중고 승용차여서 에어컨이 고장 났던 터라 창문을 열고 달렸는데 들어오는 더운 공기가 답답하기 까지 했다. 눈에서 눈물이 다 마를 때 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한 곡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김광석의 "일어나"인 것이다. 완전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대학 1학년 5월, 대학생이 되면 처음 할 일은 김광석의 공연을 보리라~라는 다짐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찹찹한 마음으로 "김광석 다시 부르기2"를 사 놓고 듣지 않고 있다가 중고교 때 펜팔을 했었던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조창인 작가의 "가시고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테입의 비닐 포장을 뜯고 듣기 시작하여 그 책을 읽는 며칠 동안 내 하숙방에는 김광석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붉어진 내 눈망울에서는 뜨거운 물이 뚝뚝 떨어졌었다. 우연도 그런 우연이 어디 있으랴~ 우연찮게 읽게 된 한 편의 소설과 "김광석 다시 부르기2"는 마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O.S.T 마냥 절묘하게 착착 달라붙었다. 그 뒤로 "다시부르기2"는 내가 사랑하는 음반 베스트3 에서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게 되고, 그제 서야 김광석과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고 CD를 한 장 한 장 사 모으면서 필자는 김광석의 팬이 되어 갔다.

이 후의 일화는 별거 없다. 군 입대를 앞두고 떠난 배낭여행에서 김광석 노래만 들으며 걷고 걷고 또 걸었던 일, 입대를 하고 신교대 퇴소 전 날 가수 지망생이던 동기 녀석이 불러준 "이등병의 편지"를 취침등의 붉은 불빛 아래에서 들으며 다들 눈물 찔끔 거리면서 상념에 잠졌던 일... 정도가 전부이다.

이 처럼 김광석의 노래는 인생사 곳곳에서 빛을 바란다. 그의 노래는 꼭 내 이야기 같다. 내가 겪었던 지난날을,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내가 살아 나갈 앞 날 들에 대한 얘기를 해 주고 있는 듯한 김광석의 노래... 김광석 자신도 서른 두해 밖에 살지 못했고, 하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김광석 보다 세상을 덜 살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을 많이 살아본 인생의 끝자락에서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필자보다 몇 살 많은 지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넌 나이도 어린것이 어떻게 김광석의 노래를 이해할 수 있었느냐~ 네가 겉늙은 거냐 아니면 나이에 맞지 않게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것이냐~(동 연배들 보다 성숙한 것이냐)" 뭐 이런 물음 이었는데 난 이런 반문을 했다. "그러는 당신 역시 그리 길게 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세상을 많이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김광석 노래에 공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 했고 살아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김광석이 깊고 깊은 목소리로 이야기 해주고 있지 않느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라고 말이다. 그 지인은 내가 선물한 "다시 부르기2"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김광석 노래를 마음으로 들었다고 한다. 김광석의 노래는 그런 것이다.
김광석의 이름 앞에 (故)자가 붙은 지 12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글에서 난 (故)김광석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김광석은 김광석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가 생존해 있던지~ 고인이 되었던지~ 내게 있어 김광석은 여전히 특별한 가수이고, 그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 그를 대신 할 수 있는 어떠한 누구도 나오지 않고 있지 지금...  생과 사를 떠나 김광석은 "김광석"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Write by-아브의 지옥]

by 아브의지옥 | 2007/12/14 22:04 | 내가 들은 이 음악 | 트랙백

6년의 기다림... 토이 6집 "Thank You"

"내가 들은 이 음악" 그 첫 번째는 얼마 전 발매된 토이 6집이다.

2001년에 토이 5집 "Fermata"와 "Live Toy" 이 후 장장 6년 동안의 기다림은 실로 길었다.

5집 발표 이 후의 활동으로는 MBC에서 "All That Music"을 진행하며 더올 이라는 탄탄한 변태 지지층을 확보했고, 결혼 이후 DMB 음악 방송인 "Round Midnight"으로 돌아와 잠시 동안 숨길 수 없었던 DJ로서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2002년에 "A Walk Around The Corner"라는 에시드 일렉트릭 사운드로 프로젝트 엘범을 발표 하기도 하였다.

천재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강백호와 윤대협, 서태웅, 정우성 정도;;) 한국 음악계에는 조동익, 윤상이 있었고, 그들의 계보를 잇는 "천재 유희열" 그가 자그마치 6년 동안 한 장의 음반만을 준비했다. 고정 팬 층도 두텁거니와, 사랑타령 히트메이커인 그의 6집이 기약 없이 늦어지자 많은 이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그 음반을 지금 우리는 손에 들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약판매가 뜨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게 구매하였고, 발매 하루 만에 들어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과 주관적 소견에 입각해서 이번 음반을 이야기해 보려한다. 

우선은 6년이란 준비기간 이다. 물론 음악작업만 한 것은 아니다. 라디오를 두 개나 진행했고, 그가 프로듀싱한 프로젝트 음반도 한 장 내고, 결혼을 하고 사랑의 결실로 딸 아이 까지 세상에 나왔을 정도로 공사다망했던 유희열 이다. 하지만 이번 6집에 담겨있는 음악들은 6년까지 걸리지 않았어도 충분히 보여줬을 음악들 이었다. 언제나 시대를 앞섰던 음악들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유희열이 아닌가? 지금은 2007년의 끝자락, 시부야적이고 에시드적이며 라운지스러운 그런 음악들은 이젠 새로운 것이 아닐 뿐더러 다소 지겨운 시점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충분히 넘쳐나고 있는 음악들의 그 이상을 보여줬어야지 타당하다는 말이다. 2003년부터 진행했던 "All That Music"의 음악 선곡에서 이미 에시드와 시부야적인 음악적 관심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런 관심을 자기 음악화 하는데 6년은 너무 길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음악적 성격을 완성 지었다고 볼 수도 없는 점은 5집과 비교해 볼 때 그 정도의 발전성은 찾아볼 수 없는 점에 있다. 세월은 6년이나 흘렀지만 새롭지 않은 음악들로 채워진 음반으로 나는 이번 6집을 받아들인다.

두 번째로 음악적인 부분이다. (음악적인 부분이라 해도 음악적 견해와 지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난 이번 6집을 다 듣고서 언젠가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말로 기억한다. "처음 만들어둔 곡에 수정과정을 많이 더할수록 곡의 중심이 흐트러진다." 뭐 이런 말이었는데 이번 6집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난 생각한다. 코드진행이 너무 자잘하고 복잡해서 곡에 손을 너무 많이 댄듯한 것 같고, 공중에 붕~뜬 가벼운 느낌이다. 한 마디로 귀에 쏙 안 들어온다.

사운드에는 언제나 각별한 정성을 쏟는 그이기에 이번에도 그 공역을 팍팍 느낄 수 있었다. 근래에 들어 본 엘범들 중에서 이런 풍부한 사운드 감을 들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탁월한 사운드 센스이다. 화려한 사운드와 기법들이 들어간 일렉트로니카적으로 우수한 이 곡 들은 반면 그러한 주변적 요소가 곡의 중심 맥락에 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끔 만들어 버린 산란적 요소로도 더불어 작용했다 본다. 어쿠스틱한 곡 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 와 닿는 정도의 우수함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세 번째로는 객원보컬 편성이다. 이번 6집은 발매 이 전 부터 평단의 호평과 함께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윤하"의 라디오 발언 파문으로 세간의 집중을 받기도 했었다. 그 발언 내용이 어쨌건 난 음악으로 납득 할 수 있는 답을 듣고 싶었었고, 들어본 결과 곡 느낌에 윤하가 부합하기는 했다. 단지 무난한 정도의 소화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잘하네~"정도) 아마도 그 부족한 2%는 윤하의 어린 나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토이 5집 때 윤하는 초등6학년... 감수성의 차이는 실로 클 것이다.) 나는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을 듣자마자 "박기영"이 떠올랐다. 유희열이 단지 윤하의 음색과 보컬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객원 보컬에 편성 시켰다면 박기영이 윤하보다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 곡에서 윤하의 그 음악적 색깔은 박기영의 전면 특허다. 이제 갓 여물기 시작한 윤하 보다는 시간에서 묻어 나오는 녹녹함을 가지고 있는 박기영이 탁월했을 선택이었지 않았을까? 라고 곱씹어 본다.

솔직히 나는 이번 6집의 대부분의 곡이 솔깃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객원 보컬이 아무리 윤상, 조원선, 김형중, 김연우, 성시경 일지언정 그들의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전의 토이 음악에 객원 보컬로 참여 하면서 곡에 부합하는 가장 탁월한 보컬들 이었는데, 곡 들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니 그들의 목소리도 이젠 별로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유희열이 토이라는 타이틀로 곡을 쓰는 애당초부터 보컬을 정해두고 그들에 맞는 곡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었다. 특정 보컬을 어떠한 틀(스타일) 안에 묶어놓고 곡을 쓰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 그렇다보니 6년이 지났지만 그들이 부른 토이 음악은 별반 달라져 있는게 없었다.

네 번째로 이번 6집의 주제인 "Thank You"이다. 나는 토이 1,2,3,4,5집의 발전적 계승을 이번 6집에서 바랬지만, 토이가 아닌 유희열의 새로운 음악만을 접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이번 6집은 Thank You라는 주제가 보여주듯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대상과 소재를 담고 있다. 토이 음악의 특별한 색깔은 남들과 차별화된 사랑타령을 하는 것이고, 그 사랑타령의 애절하고 애잔함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6집에는 그랬던 사랑타령이 보이지 않는다. 주제가 Thank You라서 고마움만을 전하고 마는 것인지? 사랑타령은 유부남이라서 이젠 하지 않는 것인지? 윤상도 그렇고, 김현철도 그렇고 결혼들만 하면 모두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음악가의 현재와 마음을 표현하고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그 음악가의 음악이고, 때때마다의 다른 상황 속에서 변해가는 삶을 사는 과정 속에서 만드는 것이 음반이라지만, 유희열 만은 토이만의 음악적 성향(사랑타령이라고 필자는 지칭)을 지켜내 줄 것이라 굳게 믿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그 사랑의 결실로 아이까지 세상에 나왔으니 그 고마움이야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에 대한 고마움 또한 이해되는 바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타령 하는 토이 음악이 듣고 싶었었다. 고마운 마음의 표현을 음악으로 담아내고 싶었다면 비정규 음반 정도가 적당했을 텐데 라고 생각한다.

토이만의 사랑타령은 특별하다.
이전까지 내 놓은 음악들의 그런 점들이 좋아서 좋아한 것인데 아무리 고마운 것들이 많기로서니 이전의 그런 것 들을 찾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자신만의 이야기로 대치해 놓은 이번 음반은 6년을 꾹 참고 믿음으로 기다린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바로 이 점이 이번 토이 6집에 가장 섭섭한 부분이며, 정이 안 가는 이유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타령 대신 유희열 자신의 이야기들로 사랑타령이 특허인 토이에 실어 내냔 말이다.

변함없는 것과 변하는 것 모두 가장 인간다운 것이고, 한 음악인을 지켜보는 것 또한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아울러 아끼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 팬으로서 덕목이라면, 변해가는 음악인과 그의 음악을 애써 인정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 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은 이전의 그런 스타일(사랑타령)을 기대하고 음반을 구매한 소비자로써의 권리일 것이다. 지금까지 토이의 모든 음반을 CD로 소장하면서 그의 팬이라고 자처했다면, 팬으로써의 그 덕목들을 버리고 서라도 이전의 음악을 돌려 달라~라고 말하는 소비자가 되겠다.

K-1에서 말도 안 되는 입식타격 격투기를 하는 최홍만과 김민수를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편파적 관점으로 감싸 도는 그런 식의 중계나 관전이 옳지 않듯이, 들을 만은 하기에~ 6년 동안 고생해서 내 놓은 음반이기에~ DJ유의 음악이기 때문에~ 덮어두고 "좋아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6년 이란 준비기간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길었을지 모르겠지만, 유희열 에게는 왠지 부족한 시간들 이었던 것만 같고, 중압감에 시달리면서 애써 마무리 지어놓은 듯한 흔적들이 보이는 이번 토이 6집, 설령 그가 음악적 한계에 부디 쳐서 과거보다 나을 것 없는 음악들로 6년이란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팬들을 실망 시켰더라도 이번 음반에 담지 못한 음악들이 몇 곡 있고, 차후 어떤 식으로든지 음반으로 낼 계획이라고 하니 지금의 그 아쉬움들은 그때 다 풀어 줄 것이고,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해 주리라 믿어 맞이한다. 그는 천재니까. 

                                                                                       [Write by-아브의 지옥]

by 아브의지옥 | 2007/12/13 22:14 | 내가 들은 이 음악 | 트랙백 | 덧글(1)

내가 들은 이 음악...?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음원을 쉽게 구해서 들어 볼 수 있는 요즘엔... 그 편리성 때문인지 음악에 대한 진지한 감상도 예전만 같지 않는 것 같다.


 

쉽게 구해서 몇 번 들어보고, 하드용량을 늘려야 한다거나 포멧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삭제 일순위에 드는 것이 바로 다운 받아둔 영화, MP3음원, 스캔된 만화나 야동 등일 것이다.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애착은 과거 테입이나 CD를 사거나, 라디오 등을 통해서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때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음반을 사서 음악을 듣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이 다수에서 밀려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히려 특수한 계층에 속한다 할 정도이니 말이다.


난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다고 음악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음악 하나만은 많이 들어본 정도;;)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이 곡 어때?" 혹은 "이 음반 어때?"라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거의 대부분의 대답이 "좋던 걸~별로야~"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답변을 듣게 된다.


물론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 정답일 수 있고, 음악이 그들의 관심사가 아닌데 그 이상의 대답을 바랄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수단의 보편화가 일구 워 놓은 "하향 평준화된 음악을 듣는 가치"인 것이다.


요즘의 음악은 BGM(BackGround Music) 정도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음이 바로 앞에서 말했던 "하향평준화 된 음악의 가치"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는 BGM, 공부할 때나 일을 할 때 등지의 BGM은 음악을 주가 아닌 부로 만들어 버리고 있고, 음악이 주가 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요즘에 노래 한 곡이나, 음반 한 장을 집중해서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찾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BGM 기능으로써 음악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그 이상의 관심을 음악에 두지 않는 것이 바로 "하향평준화 된 음악의 가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음악을 듣는데 집중이 필요해? 그냥 들으면 되는 거 아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듣는 음악에 애정이 들어갈리 만무하다. 그냥 듣는 음악은 그냥 정도의 자기 가치로 음악을 여기는 것이다. 나는 "애정 있는 관찰"이 음악을 듣는 집중력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 음악인과 그의 음악을 애듯하게 여긴다면, 분명 한 곡 한 곡을 애정의 마음으로 듣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그냥 듣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정(혹은 공감)을 갖고 집중해서 음악을 듣고 있자면 가사뿐 아니라, 음악적인 부분까지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처음엔 가사와 멜로디가 들리고 좀 더 들어가면, 드럼과 베이스 리듬이 들리고, 기타와 건반 연주가 들리더라~ 라는 식의 애정의 집중력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고로 이러한 과정들이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인가 자신도 모르게 음악을 듣는 귀가 성장해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의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음악의 가치는 음악을 듣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수반 되어질 때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애정 없이 듣고 있는 음악이 자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사진에 빗대어 보자면.. 마음에 드는 혹은 느낌이 가는 한 장의 사진과 스틸(그냥 찍어대는) 사진의 의미는 다르지 않느냐~ 정도?) BGM적 기능 이상을 음악에서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BGM도 훌륭한 음악의 기능이니 말이다. 하지만 BGM을 버린다면 음악이 주는 더 많은 선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라고 나는 말해주고 싶다. 음악가가 그 곡을 쓸 때의 감수성에 한 발작 더 다가 갈수 있을 것이고 수준 떨어지는 음악과 좋은 음악, 훌륭한 음악, 완벽한 음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음악 듣는 귀를 갖게 될 것이며 전에 없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내가 들은 이 음악"에 음악과 음악인 그리고 음반에 대해서 내 멋대로 끄적여 볼 생각이다. 리뷰가 될 수도 있고, 평론이 될 수 있고, 단지 음악 추천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음악에 대한 애정을 지금까지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던 것에서 글로 다시 한 번 끄집어낼 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것들아~ 음악을 좀 더 진지하게 들어봐~ 이전과는 달리 느껴질 거야~" 이다. 

                                                                                       [Write by-아브의 지옥]

by 아브의지옥 | 2007/12/13 17:28 | 내가 들은 이 음악 | 트랙백

이거... 이러면 안되는데...;;

하루종일 공부는 안 하고 주성치 영화를 몇편 보았다.

운동 갈 때가 되어서야 고양이 새수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자정을 넘긴 지금...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by 날고싶은사람 | 2006/02/02 00:42 | 끄적거림 | 트랙백

어렵다.

아직 적응이 안되고,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이름이 참 좋다. 이글루~

by 날고싶은사람 | 2006/01/30 13:09 | 끄적거림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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